순천 송광사 십육조사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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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순천 송광사 십육조사진영은 고려 후기부터 조선 후기까지 송광사에서 활동했던 16명의 고승들을 기리기 위해 제작된 초상화이다. 보조국사 지눌을 비롯한 16명의 국사 진영은 송광사 국사전에 봉안되어 있으며, 1780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십육조사진영은 조선 중기 불교 초상화의 대표작으로 예술적, 역사적 가치가 높이 평가되어 1990년 대한민국의 보물 제1043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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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광사 - 순천 송광사 국사전
순천 송광사 국사전은 송광사 내 조선 초기 건축물로, 주심포 맞배집 양식에 16국사 진영이 봉안되어 있고, 전쟁의 피해 속에서도 보존된 가치 있는 건축물이다. - 18세기 회화 작품 - 신윤복필 풍속도 화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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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송광사 십육조사진영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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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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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순천 송광사 십육조사진영 |
명칭 | 순천 송광사 십육조사진영 |
유형 | 보물 |
지정 번호 | 1043 |
주소 |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송광사안길 100, 송광사 (신평리) |
시대 | 조선시대(1780년) |
지정일 | 1990년 9월 20일 |
소유자 | 송광사 |
관리자 | 송광사 |
문화재청 ID | 12,10430000,36 |
2. 제작 배경 및 역사
송광사 16국사 진영은 고려 후기부터 조선 후기까지 송광사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16명의 고승들을 기리기 위해 제작되었다. 보조국사 지눌을 중심으로, 그의 사상과 선풍을 계승한 2세 진각국사 혜심부터 16세 고봉화상까지 16명의 국사 진영이 포함되어 있다.
보조국사 지눌을 중심으로 송광사에서 고려 후기에 활동한 16명의 고승 초상화 16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보조국사 진영은 가로 77.4cm, 세로 134.8cm이며, 나머지 진영들도 비슷한 크기와 제작 기법으로 보아 같은 화가가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순천 송광사 십육조사진영에는 보조국사 지눌, 진각국사(혜심), 3세 청진국사, 4세 진명국사, 5세 자진국사, 6세 자정국사, 7세 원감국사, 8세 자각국사, 9세 담당화상, 10세 혜감국사, 11세 자원국사, 12세 혜각국사, 13세 각암국사, 14세 정혜국사, 15세 홍진국사, 16세 고봉화상 등 16명의 고승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송광사를 중심으로 고려 후기에 활약한 승려들이다.
정조 4년(1780)에 금어, 쾌윤, 복찬 등이 16국사 진영을 제작하였다. 이는 보조국사 진영 하단에 기록된 화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6점의 작품은 규격이나 제작 수법이 거의 같아서 동일 시기에 동일 화가들에 의해 일괄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진영들은 송광사 국사전에 봉안되어 있다.
3. 구성 및 형식
보조국사 진영은 오른쪽을 바라보는 전신좌상이며, 나머지 국사들은 중앙을 향해 앉아 있는 모습이다. 보조국사는 녹색 장삼에 붉은 가사를 입고 오른손에 지팡이를 든 모습이다. 옷자락은 선으로 윤곽을 그리고 색의 농담으로 표현하여 부드럽고 안정감 있다.
보조국사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짝수 세대 7명의 국사가 중앙을 향해 오른쪽 얼굴을 보이고, 오른쪽에는 홀수 세대 8명의 국사가 중앙을 향해 왼쪽 얼굴을 보이는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
3세 청진국사, 4세 충경진명국사, 8세 자각국사, 9세 담당화상, 10세 혜감국사, 12세 혜각국사, 13세 각암국사, 14세 부암정혜국사, 15세 홍진국사 등 9점은 의자 위에 가부좌를 튼 자세이다.
지물로는 불자를 들거나 보조국사처럼 주장자를 짚고 있으며, 지물이 없는 경우에는 선정인 또는 설법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대부분 암갈색 배경에 녹색을 주조색으로 사용하여 안정감 있고 차분한 느낌을 준다.
4. 등장인물
16점의 진영은 모두 크기와 제작 방식이 거의 같아서, 같은 시기에 같은 화가가 그린 것으로 보인다. 보조국사 진영을 중앙에 두고, 왼쪽에는 짝수 세 7인이, 오른쪽에는 홀수 세 8인이 중앙을 향해 배치되어 있다.
4. 1. [[보조국사]] 지눌 (제1세)
보조국사 지눌은 고려 후기 불교 개혁 운동을 주도한 승려로, 조계종의 창시자이다. 순천 송광사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보조국사의 초상화는 가로 77.4cm, 세로 134.8cm이다. 16점 모두 규모나 제작 수법이 동일하여 같은 화가에 의해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보조국사는 오른쪽을 바라보며 앉아있는 모습으로, 녹색 장삼에 붉은 가사를 입고 오른손에 지팡이를 쥔 모습이다. 옷자락은 선으로 윤곽을 그리고 색의 농담으로 부드럽고 안정된 느낌을 준다.
정조 4년(1780)에 제작된 이 초상화는 보존 상태가 양호하며, 조선 중기 불교 초상화의 기법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다.[1]
4. 2. [[진각국사]] [[혜심]] (제2세)
진각국사 혜심은 보조국사 지눌의 제자로, 조계종 발전에 기여한 인물이다. 순천 송광사를 중심으로 고려 후기에 활약한 16명의 고승 중 한 명으로, 송광사 국사전에 진영이 봉안되어 있다. 16점의 진영은 규격 및 제작 수법이 거의 같아, 동일 시기에 동일 화가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4. 3. 청진국사 (제3세)
진각국사 혜심의 제자인 청진국사는 조계종 발전에 기여하였다. 16점의 진영은 규격과 제작 수법이 거의 같아, 동일 시기에 동일 화가에 의해 일괄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청진국사는 의자 위에 가부좌를 한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4. 4. 진명국사 (제4세)
4세 진명국사(충경진명국사) 진영은 의자 위에 가부좌를 한 모습이다. 16점의 진영은 규격 및 제작 수법이 거의 같아, 동일 시기에 동일 화가에 의해 일괄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진영은 모두 전신 의자상이지만, 3세 청진, 4세 진명, 8세 자각, 9세 담당, 10세 혜감, 12세 혜각, 13세 각암, 14세 정혜, 15세 홍진 등 9점은 의자 위에 가부좌를 한 모습이다.[1]
4. 5. 자진국사 (제5세)
회당자진국사(晦堂慈眞國師)는 5세로, 보조국사 지눌의 뒤를 이어 송광사를 중심으로 고려 후기에 활동한 16명의 고승 중 한 명이다. 자진국사를 포함한 16명의 진영은 크기와 제작 기법이 거의 동일하여, 같은 시기에 같은 화가가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자진국사의 진영은 의자에 앉은 전신상의 형태이나, 가부좌를 틀고 있지는 않다. 손에는 불자(拂子)를 들고 있으며, 진영의 색조는 대부분 어두운 암갈색 배경에 녹색을 주로 사용하였다.[1]
4. 6. 원감국사 (제6세)
圓鑑國師중국어 (1250년 ~ 1322년)는 고려 후기의 승려이다. 송광사를 중심으로 활동하였으며, 송광사 제6세이다. 16점의 작품은 규격이나 제작 수법이 거의 같아서 동일 시기에 동일 화가에 의해 일괄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형식은 전신 의자상으로 되어 있다.
4. 7. 자정국사 (제7세)
慈精國師중국어의 초상화는 순천 송광사 십육조사진영 중 하나로, 송광사를 중심으로 고려 후기에 활동한 16명의 고승들을 그린 16점의 그림 중 하나이다.
다른 15점의 초상화와 마찬가지로, 慈精國師중국어의 초상화 역시 규모와 제작 기법이 동일하여 같은 화가에 의해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1780년(정조 4년)에 제작되었으며, 금어(金魚) 쾌윤(快玧), 복찬(福璨)이 그린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1]
형식은 전신 의자상으로 되어 있으며, 색조는 대부분 암갈색의 어두운 배경에 녹색을 주색조로 사용하고 있다.[1]
4. 8. 자각국사 (제8세)
자각국사는 고려 후기 순천 송광사를 중심으로 활동한 16명의 고승 중 한 명이다. 8세 자각국사의 진영은 의자 위에 가부좌를 한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1] 16점의 진영은 크기나 제작 기법이 거의 같아, 같은 시기에 같은 화가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1] 1780년(정조 4년)에 다시 제작되어 영당에 안치되었으며, 금어, 쾌윤, 복찬이 제작에 참여했다.[1]
4. 9. 담당화상 (제9세)
9세 담당화상은 의자 위에 가부좌를 한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16점의 진영은 규격이나 제작 수법이 거의 같아서, 동일 시기에 동일 화가에 의해 일괄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4. 10. 혜감국사 (제10세)
혜감국사는 고려 후기 송광사를 중심으로 활동한 16명의 고승 중 한 명이다. 16점의 진영은 규격과 제작 수법이 거의 같아, 동일 시기에 동일 화가에 의해 일괄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혜감국사의 진영은 의자 위에 가부좌를 한 전신 의자상으로 묘사되어 있다.
4. 11. 자원국사 (제11세)
송광사 십육조사진영 중 제11세 자원국사 진영은 송광사 국사전에 봉안되어 있는 고려 후기 16명의 고승 진영 중 하나이다.[1] 16점의 작품은 규격 및 제작 수법이 거의 동일하여 같은 시기, 같은 화가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1]
자원국사 진영은 의자에 앉은 전신상으로 묘사되어 있다.[1]
4. 12. 혜각국사 (제12세)
혜각국사는 고려 후기 송광사를 중심으로 활동한 16명의 고승 중 한 명이다. 16점의 진영 중 12번째에 해당하며, 의자에 가부좌를 한 자세로 묘사되어 있다. 다른 진영들과 마찬가지로 어두운 배경에 녹색을 주조색으로 사용하였다.
4. 13. 각암국사 (제13세)
각암국사는 고려 후기 순천 송광사를 중심으로 활동한 16명의 고승 중 한 명이다. 송광사에 있는 16점의 진영은 크기나 제작 방법이 거의 같아서, 같은 시기에 같은 화가가 그린 것으로 보인다. 각암국사의 진영은 의자 위에 가부좌를 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진영은 대부분 어두운 갈색 바탕에 녹색을 주로 사용하여 표현되었다.
4. 14. 정혜국사 (제14세)
16점의 진영은 규격 및 제작 수법이 거의 동일하여, 같은 시기에 동일한 화가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14세 정혜국사를 포함하여 3세 청진, 4세 진명, 8세 자각, 9세 담당, 10세 혜감, 12세 혜각, 13세 각암, 15세 홍진의 진영 등 9점은 의자 위에 가부좌를 한 모습이다.[1]
4. 15. 홍진국사 (제15세)
홍진국사(弘眞國師) 진영은 순천 송광사에 소장된 16조사진영 중 하나로, 의자에 가부좌를 한 자세를 하고 있다. 다른 국사 진영과 마찬가지로 규격 및 제작 수법이 동일하며, 1780년에 금어(金魚) 쾌윤(快玧), 복찬(福璨)에 의해 제작되었다.[1]
4. 16. [[고봉화상]] (제16세)
고봉화상(高峯和尙)은 고려 후기 순천 송광사를 중심으로 활동한 16명의 고승 중 한 명이다. 송광사 국사전(國師殿)에 봉안된 16조사진영 중 제16세에 해당한다. 16점의 진영은 크기와 제작 기법이 거의 같아, 같은 시기에 같은 화가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1780년(정조 4년)에 다시 제작되어 영당에 안치되었으며, 제작자는 금어(金魚) 쾌윤(快玧), 복찬(福璨)이다. 진영은 의자에 앉은 전신상으로 표현되었으며, 일부는 의자 위에서 가부좌를 틀고 있다. 손에는 불자(拂子)를 들거나 주장자(柱杖子)를 짚고 있으며, 선정인(禪定印) 또는 설법(說法) 자세를 취하기도 한다. 색조는 대부분 암갈색 배경에 녹색을 주로 사용하였다.
5. 예술적 특징
순천 송광사 십육조사진영은 조선 중기 불교 초상화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섬세한 붓 선과 안정적인 구도, 차분한 색채를 사용하여 고승들의 위엄과 덕성을 표현하고 있다. 특히 옷 주름을 표현할 때 선으로 윤곽을 그리고 색의 농담을 활용하여 부드럽고 안정된 느낌을 주었다.[1]
보조국사 지눌을 비롯한 16명의 고승 진영은 모두 크기와 제작 기법이 동일하여, 같은 화가가 그린 것으로 보인다. 그림 속 고승들은 대부분 암갈색 배경에 녹색을 주로 사용하여 표현되었다. 지물(持物)로는 불자(拂子)를 들거나 주장자(柱杖子)를 짚고 있으며, 지물이 없는 경우에는 선정인(禪定印) 또는 설법(說法) 자세를 취하고 있다.[1]
6. 문화재적 가치
1780년 (정조 4년)에 제작된 이 진영들은 보존 상태가 양호하며, 조선 중기 불교 초상화 기법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다.[1] 16점의 작품은 규모나 제작 기법이 거의 같아서 같은 시기에 같은 화가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1] 보조국사 진영 하단에 상세한 기록이 있고, 나머지 진영에는 시주자의 이름만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 기록에 따르면 금어, 쾌윤, 복찬이 제작에 참여하여 영당에 안치되었다.[1]
보조국사 지눌을 비롯하여 진각국사, 청진국사 등 송광사를 중심으로 고려 후기에 활약한 16명의 고승들의 초상화는 조선 중기 불교 초상화의 대표작으로서 예술적, 역사적 가치가 높다. 16명의 고승들의 모습을 통해 당시 불교계의 흐름과 사상적 경향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1] 1990년 9월 27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043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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